벌써(!) 중위 군의관이자 대대 의무참모로 부임한지 3주가 지났습니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대대장님 예하 여러 간부와 성실하고 착한 의무병들 덕에 군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사는 곳은 부대 근처의 군인아파트로 여느 군인아파트와 마찬가지로 시설은 그저, 그렇습니다만.. 다른 중, 소위와 달리 영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특권 자체로 감사하고, 또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은 의사이건 아니건 간에 군의관의 일상에 대해 - 조금은 왜곡된 면이 없지는 않지만 - 비교적 진실되게 알고 계십니다만, 주위의 많은 친구들 - 군 미필자 및 여자 - 은 종종 제게 "군의관은 뭐하고 있어?"라고 묻곤 합니다. 심지어는 공중보건의와 비슷한 직책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 글은 그 분들에 대한 답변이 되겠습니다.
먼저, 군의관은 의과대학 6년을 졸업하고 인턴 1년, 혹은 인턴 1년 및 레지던트 4년간의 과정을 이수한 자가 오게 됩니다. 즉, 의과대학을 바로 졸업하고 군에 입대할 경우 군의관으로 올 수 없는 거죠.
인턴 1년만을 이수하고 군에 입대하는 사람은 신체등급 1~3급의 경우 100% 군의관으로, 4급의 경우는 확률에 따라 군의관 또는 공중보건의로 입대하게 됩니다. 최근 여의사들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군입대를 하는 의사의 수가 적어져 신체등급 4급까지도 군의관으로 오는 분위기입니다.
레지던트 4년을 마치고 군대에 오는 사람은 군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의의 수에 따라 신체등급 1급부터 군의관으로 선발되게 됩니다. 즉, 극히 적은 인원을 선발하는 과를 전공하는 분들은 1급을 받고도 공중보건의로 선발이 되는가 하면 정형외과와 같이 군에서 많이 필요로 하는 전공을 갖고 계신 분들은 신체등급 3~4급을 맞고도 군의관으로 선발되게 됩니다.
대개의 경우 의사들은 군의관보다는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중보건의의 삶을 선호합니다만, 불행히도(?) 군의관에 선발된 의사의 경우 매년 2월에 경상북도 영천의 육군 3사관학교에서 7주, 대전 군의학교에서 2주, 총 9주간의 의무사관후보생 훈련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인턴 1년만을 이수하고 군에 입대하는 사람은 '중위'로, 레지던트 4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한 사람은 '대위'로 임관하게 됩니다. 이 계급의 변동없이 3년간 군에 복무하게 됩니다.
초임부임지는 육군본부 인사담당처에서 컴퓨터 난수에 의해 - 소위 뺑뺑이 - 선택됩니다. 중위의 경우 대부분 대대급의 의무소대장으로 근무하게 되며, 극히 일부는 사단의무대의 군의관으로 지내는 영광(?)을 지니게 됩니다. 대위의 경우 병원급의 군의관, 의무중대장, 혹은 사단의무대 군의관으로 골고루 배치되게 됩니다만, 야전보다는 병원을 대부분 선호합니다.
이상으로 군의관의 선발 및 배치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드렸고, 지금부터는 제가 속한 중위 군의관의 삶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야전으로 배치된 중위 군의관은 대대급의 군의관 및 의무참모를 하게 됩니다. 육군을 예로 들면, 보병사단의 경우 의무중대장 예하에 배치되게 되며, 포병여단의 경우 대대장 직속 특별참모로 배치되게 됩니다. 기갑이나 전차부대의 경우도 대대장 직속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위 군의관의 삶은 일반 위관급 간부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부대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8시 부근의 출근, 오후 5~6시경의 퇴근을 하게 되며, 대대장의 권한에 따라 일부는 BOQ(독신자 간부 숙소 - 대개 영내에 있음), 일부는 관사에 살게 되고, BOQ에 배치되었으나 BOQ에 살기를 거부하는 대부분의 군의관들은 자비로 월세를 얻어 살기도 합니다. BOQ의 경우, 매일매일 부대 안에서 취침을 해야 하며 부대복귀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일상에 매우 많은 제약을 받게 되므로 대부분의 군의관은 이를 피하려고 하며, 소, 중위의 경우 육군규정상 관사에 살 수 없게 되어있으나, 군의관의 경우 대부분의 부대에서 대대장의 권한으로 관사에서 거주하는 경우가 많기에 BOQ로 배치되었을 경우에도 대대장과 적당히(!) 네고를 하면 관사로 나오는 경우도 적지많은 않습니다.
대부분의 부대가 도심지와 떨어져 있고, 심지어는 시골 읍내에서도 한두시간씩 산길을 돌고돌아야 나오는 먼곳에 위치해 있는 경우도 많아 군의관들은 자가차량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역시 육군규정에서 소, 중위의 경우 자가차량 보유를 금지하고 있으나 군의관의 경우 응급환자이송에 자가용을 사용할 경우가 비일비재하므로 숙소문제에서와 같이 대부분의 부대에서 군의관에게 특혜(?)를 주고 있습니다.
군의관은 일과시간에는 의무대에서 환자진료 및 행정업무를 보게 되며, 일과시간 이후에는 자유이나, 육규에서 규정한 대로 위수지역 - 부대에 따라 다르나, 우리 부대의 경우, 부대에서 1시간 거리 내에 있어야 함을 원칙으로 함 - 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서울 거주자의 경우, 서울과 완전히 맞닿아 있는 인접부대를 제외하고는 집에 갈 수 없습니다. 물론 일년에 개개인에게 부여되는 25일간의 연가를 사용할 경우, 위수지역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퇴근시간 이후에도 언제든 의무대에 군의관의 진료를 필요를 하는 환자 발생 시, 또는 부대 비상소집시 부대로 복귀해야 하며, 이때 위에 적은 것과 같이 위수지역을 벗어나 지정시간에 돌아오지 못할 경우 징계를 당하게 됩니다. 이 위수지역 개념이 군의관의 QOL(Quality of life)을 공중보건의보다 현격하게 떨어뜨리는 역할을 합니다. :(
또한 일과시간에는 환자진료 외에, 오전의 상황보고회의, 오후의 결산회의에 참석해서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꾸욱 참아가며 몇십분 내지 길게는 몇시간까지 들어야 하며 - 이 회의에서 군의관이 보고를 하거나 할 말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 군에서 군의관에게 부여한 온갖 잡일 - 부식 검사, 방역, 말라리아 예방약 투여, 유행성 출혈열 예방접종, 순회진료, 정기외진 선탑, 응급처치요원 양성 교육, 의약품 신청 및 수령 등 - 을 해야 합니다. 물론, 이 일들의 loading은 병원에서 내게 부여되는 그것에 비해서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나 그간 해 본 적 없는, 익숙치 않은 일을 군에서 요구하는 절차와 서류에 맞추어 나의 자율성과 무관하게 일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여간 짜증나는 일이 아닙니다.
또한 군의관의 경우 부대에서 행하는 - 본인이 원치않는 행사 - 에 강제로 동원되어야 할 때도 많습니다. 또한 술자리에서는 간부들의 상관을 향한 어이없는 '아부'들을 꾸욱 참고 들어야 하는 인내심도 강력히 요구됩니다. 가끔은 모임의 분위기나 대대장의 비위를 맞춰 주기 위해 나 역시도 내키지 않는 그러한 멘트를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한편, 부대훈련에 의무지원을 나가서 야외에서 숙영하는 경우도 많은데 텐트를 치고 생활하게 되므로 더위와 추위, 비위생적인 환경 등과 싸워야 합니다. 특히 군생활 동안 USMLE등의 공부와 시험을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이 점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훈련이 많은 부대의 경우 일년에 5개월 정도 야외훈련을 나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군의관의 경우 부대에서 '가장 편한 직종'임에는 분명합니다. 하루 진료환자는 10여명을 넘지 않고, 대부분의 가벼운 sprain이나 URI, ATP정도입니다. 행정업무도 조금씩 일이 익숙해지면서 큰 부담은 되지 않고, 의무병들이 많은 부분을 대신해 주기 때문에 훈련도 없고, 특별한 행정업무도 없는 평시의 경우 군의관은 출근해서 간간이 오는 병사들을 진료하고 치료하며, 나머지 시간에는 공부를 하거나 하며 보내면 됩니다. (다른 주특기로 군 생활 한 분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리겠지만 규정상 노트북이나 PMP, MP3 Player등을 부대 내로 들여올 수 없기에 하루종일 이렇게 지내기만 하는 것도 여간 고역은 아닙니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일들을 해야 하는 군생활, 나를 의사라기보다는 군인으로 보는 간부들, 공중보건의로 군생활 하는 주위의 의사들을 보며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제한된 자유(!) 등이 군의관으로 복무하는 수많은 의사들, 그리고 저를 괴롭게 하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제가 어떻게 지내는지,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아 조금 길었지만 (중위)군의관의 삶에 대해 간단히 적어보았습니다. 이제 궁금증이 풀리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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